_cafebeir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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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엔 모든 것이 신기했다. 좋은 카페를 찾는 기준으로 고성능 머신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다. 스페셜티커피를 즐기는 이들도 많지 않았고,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라마르조꼬나 시네소, 프로밧 등을 사용한다는 얘기를 어렴풋이 들으면 메모해두었다가 꼭 찾아가곤 했다. 같은 관심사를 공유한다는 사실만으로 바리스타 혹은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도 했다.
찬스커피는 당시 커피 애호가들에게 인텔리젠시아의 블랙캣 블렌드를 마실 수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인텔리젠시아가 인수되기 전의, 커피 제 3의 물결(써드웨이브)이 꽃을 피웠을 절정의 시점에, 단맛이 농밀하게 느껴지는 그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몇 번이나 찬스커피를 찾았던 기억이 난다. 물론 찬스커피에 진득한 애정을 품고 있는 단골만큼 자주 찾지는 않았으니, 나는 그저 그곳에 방문하면 좀처럼 볼 수 없는 머신과 원두에 입을 떡 벌리고 감탄해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기억으로 2009년 문을 연 찬스커피에는 시네소와 라마르조꼬 머신이 있었다. 지금은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에만 볼 수 있는 클로버 머신도 있었는데, 고가의 머신에서 인텔리젠시아와 팀웬델보 원두를 맛보는 것은 그야말로 호사였던 기억이 난다. 공교롭게도 찬스커피 매장은 스페셜티커피가 붐이 확장될 즈음해서 문을 닫았고, 이제는 고가의 머신도 해외원두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에스프레소 전문점도 골목마다 자리해 이탈리아 사람이 부럽지 않은 시절이 됐다.
그렇다면 양평동에 다시 문을 연 찬스커피를 찾을 이유가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의문을 가지기도 전에 추억에 젖은 커피인들은 어떤 관성에 의해 그곳을 찾고 있었다. 나도 같은 마음으로 매일 아주 짧은 시간으로 공지되는 영업시간에 맞춰 그곳을 찾았고, 찬스에서 직접 로스팅한 원두로 만든 에스프레소 한 잔을 들이켰다. 커피 한 잔을 내리는데 여전히 비슷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 사장님을 보면서 나는 이곳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비단 추억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커피를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태도는 카페가 넘쳐나는 시대에도 좀처럼 마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령 우후죽순 생긴 에스프레소바에 들어서 메뉴를 보면, 영화 속 은행강도가 현금을 훔쳐 갈 때 기지를 발휘한 은행직원이 가방에 물감 폭탄을 같이 넣는 장면이 떠오른다. 진정성을 내세우는 어떤 카페는 이탈리아 정통 에스프레소 전문점을 해석해 매장을 설계했다 주장한다. 하지만 그 카페의 메뉴에는 우리나라의 모 바리스타가 고심 끝에 만든 창작메뉴가 레시피는 물론 이름까지 그대로 옮겨져 걸려있다. 메뉴가 생긴 연유를 물으니 대답으로 그것이 이탈리아의 것이라고 일러준다. 하지만 그 메뉴가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비화는 구글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은행강도가 훔쳐간 현금 다발에 묻은 흔적처럼, 어디선가 어설프게 보고들은 것을 교묘하게 차용한 것은 금방 드러나곤 한다.
애초에 식음료 메뉴에 대한 저작권 논쟁은 분명하게 잘잘못을 따져낸 경우가 드물어서, 무엇을 베껴낸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각자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커피를 사랑하는 이들이 고심끝에 문턱을 넘어 한 잔의 커피를 마시고자 할 때, 그 마음을 존중하는 카페 주인장을 마주하길 기대하는 마음을 생각하면 물감에 젖은 현금다발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진심을 다해 에스프레소 한잔을 내려주는 곳이 있다면 기꺼이 그곳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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